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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살아온 집을 이사을 앞두고..정원식물을 생각한다.
작성자 박** 작성일 2026.05.14 07:28 조회수 11
14년간 살아온 집을 이사을 앞두고..정원식물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채소도 심고 호박전도 하고 .....어느날 문뜩 이곳이 겨울에 김치 항아리 묵었던 곳이 아닌가!
26.05.14 0648l박향선na4amich
검토 전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14년간 살아온 집을 이사을 앞두고..정원식물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채소도 심고 호박전도 하고 .....어느날 문뜩 이곳이 겨울에 김치 항아리 묵었던 곳이 아닌가!26.05.14 0646l박향선na4amich 검토 전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14년간 살아온 집을 이사을 앞두고..정원식물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채소도 심고 호박전도 하고 .....어느날 문뜩 이곳이 겨울에 김치 항아리 묵었던 곳이 아닌가!26.05.14 0645l박향선na4amich 검토 전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집에 이사을 하려고 보니 정원에 치자나무가 벌써 2m정도 잘랐고 띨의 생일을 기념해 5년전에 만년동 테크노마트에서 산 화분에 높이 30cm미니 장미을 화단에 심었는데 벌써 높이가 60cm정도로 옆으로 가지을 뻗어 요사이 장미가 계속피고 있다.

이집에 이사온지 1년 2년이 지났을까 막내 남동생이 국화을 가지고 와서 어머니가 정원에 한쪽에 국화을 심었다. 그옆에는 어머니가 가지치기해 심은 치자나무가 심겨줘 있었다. 화분에는 겨울에 말라 죽었다 봄이 되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는 선인장이 있었다.

처음에 태평동 구굴다리에서 집 뒷켠에 화분에 심겨있던 치자나무을 가져와 땅에 심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화분에 여러개의 작은 나무가 있었는데 다 어디가고 이 치자나무 하나만 이집에 땅에 심었다.

이집에 이사오면서 어머니가 나중에 부엌살림이 없어지고 타올도 없어지고 여러가지가 없어지셨다고 큰 남동생을 욕을 했다. 짐을 옮기면서 잘 옮겼어야지 그걸 잘 옮기지 못해 사라지냐고 말이다. 전자제품이 냉장고인가 세탁기가 잘못옮겨서 옆이 찌그려 졌다고 용달 아저씨을 막 욕을 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막내 남동생인가 큰 남동생이 컨텍해서 온 사람이었다.어머니가 세탁기을 살떼 유천동 하이마트을 같이 갔었는데 어머니가 고르고 또 고르셨다.

요새 젊은이들은 아마 모바일폰이나 인터넷으로 쓱 사양을 보고 배달을 받아 집에 설치 할 것 같다. 어머니는 하이마트에서 막내 이름으로 이 세탁기을 사면서 다른 회사의 세탁기도 보시며 이야기 하셧다.그전에 쓰던 세탁기는 할머니가 누워계실때 똥을 싸고 누워계셔서 기저귀을 빨다 보니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해남에 둘째 고모님의 딸들이 집에 왔었는데 돈을 주더란다. 할머니는 딸이 고생한다고 우리집에서 우리 살림을 도와주신것이 아니라 딸집에서 살림을 많이 해주셧단다. 해남둘째고모집에는 딸이 6명이었고 광주에 네째고모님댁에서도 살림을 해 주셧다고 한다. 노인들도 행도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더....우리집에 오실때 통장이나 아무것도 없이 옷보따리 하나 들고 오셧다.무슨 연유이지 모르지만 내가 고등학교때인가 올려고 했다가 유천동 작은 아버지집에 좀 기거하다가 다시 전라도로 내려가셧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러셧다. 부탄 UNV에서 돌아왔는데 그 집에 갓집에 사는 사람이야기을 하며 그집은 누나가 삼부아파트사는데 남동생을 도와준다고 말이다. 남동생이 잘 살아야지 시집가서 큰소리을친다고 ...결혼해서 힘든 일이 있을때 내편을 들어주어서 시댁과 일이 생기면 해결해 줄 편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어머니는 무슨연유에서 인지 시집살이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그리고 아버지가 중간에 행동을 잘 못하신 것 같다.

작은 아버지는 군인아파트에 살때 할머니가 오셔서 작은 엄마가 작은 아버지와 같이 잘려고 할때한방에 와서 같이 잘려고 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가 다른 방에 가라고 이야기도 해주고 무슨일일 있으면 작은 어머니 편을 들어주었다고 한다.그리고 집안 행사에 갈때는 꼭 같이 다니셧다고 한다.물론 이러말도 했다. 해남에 가셔서 쌀을 가져와서는 조금만 주셧다고 말이다. 우리는 식구가 6이고 작은 집은 3명이었다. 어머니는 무척 서운하셧나보다. 그리고 고모님들이 해남이나 광주에서 오시면 응당 우리집이 잘살든 못살든 우리집이 큰집이니 응당 먼저 인사을 해야하는데 작은 집을 먼저 들리고 우리집에 소식을 전한다고 속상해 하며 이야기하셧다. 꼭 잘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려서 할머니가 오시면 할머니을 더 챙기셧다. 복숭아을 하시면 아래에는 어른이 먹기 좋은 복숭아을 봉지에 넣고 위에는 우리가 먼저 집는다고 다른 것을 넣어서 왓다고 한다.그리고 신혼초에도 아버지가 남해안에 일때문에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와 자려고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잠자리 가운데 들어와서 잤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오래간만에 들어오면서 새 치마을 사오면 같이 살던 시누가 그 치마을 가져가 입었다고 이야기하고 말이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는 가정의 법도가 무너져서 위계질서가 무너진다고 이야기하며 나에게 홀시어머니는 안된다고 누누이 자라면서 이야기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내가 채팅으로 만난 사람이 처음에 제사가 필요없다고 이야기하고 이런저런이야기을 하면서 나중에 롯데백화점에서 만났을때는 어머니가 놀라는 눈치엿는데 나보고 나이가 어려서 좋다면서 계속만나라고 햇다. 어머니 동네 계원중에 누구의 남편은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돈을 번다고 말이다.애아빠는 나보다 3살어린70년생이었다.어머니와 아버지는 7살차이엿다.

처음에 애 아빠가 이야기을 많이 하면서 걸음을 걸으면 굉장히 빨리 걷는다. 영국에 경찰은 아이와 보조을 맞추어줄 정도로 느리게 걷는다고 한다. 한데 애 아빠는 걸음이 무지 빨랐다.그리고 부산에 와서 주차비을 아낀다며 대전천변 옆에 대전한방병원 앞에 자동차을 세워두엇다. 그런데 한곳에서 오래 앉아 있지을 못하고 계속자리을 옮겼다.

어머니에게 만나기 싫다고 하니 어머니가 달래셧다. 그래도 만나보라고. 전화로 한달 간 정도 하다가 만났었다. 아무리 첫만남이지만 나이가 있는데 잠바 차림으로 나왔었다. 처음에는 쉴사이없이 이야기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기차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다 자동차을 타고 부산에서 오기도 햇다. 그러더니 한밤중에 올라왔다.비가 억수로 쏟아 지는 ....그리고 아프다고 해서 부산을 갔는데 ...지난번에 부산역 앞에 찜찔방을 예전에 찾던 곳을 갔는데 없어?다.20년전에 부산에 갓다가 애 아빠와 부산역 앞에 찜찔방에 갓었다. 그 찜질방은 상하이 거리에 잇었는데 부산역 바로 앞이엇다.KTX에서도 소개가 되엇던 것 같은데 ...

어머니는 제사을 꼭 지내야 한다는 사람이다. 이름없는 제사도 지내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법도가 없다고 이야기해서 꼭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시집을 보낸다고 햇었다.

아무튼 어찌 되었건 간에 애아빠는 영어도 할 줄알고 대한항공에 일하다가 명예퇴직한다고 햇다. 보통 대기업에서는 35세전후로 해서 승진을 못하면 1차적으로 퇴직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도 애아빠는 기술직이라 생각해서 외국에 같이 나가면 좋겟다고 생각했엇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나가고 싶다고 햇다.

난 외국에서 국제기구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내가 남편내조도 잘하고 크리스마스 바자회도 열고 나름 활동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이야기을 들으니 헤어?다는 것이다.그리고 현지인과 결혼을 해도 이혼을 하고 그나라을 떠나지 못하고 뉴질랜드와 무역을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캐나다 CUSO의 대학생 봉사단으로 왔었던 영어교사는 그나라에서 영어을 배우던 제자와 결혼을 했는데 이혼을 하고 아들을 키웠다. 참 유머러스한 남자 엿다.키가 여자와 비슷한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백인들은 나이가 들면 좀 커진다. 서로 언발란스는 아니엇는지.wx‐orld wild fund커뮤니케이션 오피서로 일하다가 나중에 캐나다로 돌아갓다. 그 곳에서 살면서 글을 써서 캐나다에서 어느 신문인가 기고을 해서 상도 받았다고 햇다. 세이백화점에 세이문고에 그여자가 쓴 책이 나왓는데 나중에 가니 그 책이 사라?다.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그 여자의 남편은 부탄 라디오에 디제이가 되었는데 나와 근무했었던 동료은 그가 영어가 가장 잘하는 사람일것이라고 햇다. 한데 부탄에서 내가 살던 모티탕에서 시장을 보려가려고 내려오면 중간에 만나게 되었는데 곳잘 사람을 웃겻다.나중에 들으니 부탄여자와 사귄다고 했나. 얼핏보니 여자가 키가 작았다.남자는 그나라에서는 지위가 있는 다쇼의 아들이었다.

부탄에서는 부부가 이혼하면 보통 여자가 애을 데려간다고 한다.남자는 크면 집을 나가고 여자가재산을 상속을 받는다고 한다. 네팔리들은 다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외국에 나간다면 일을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배우자도 일을 할 수가 있다. 각나라의 레큘레이션이 다르겟지만 일이 있다면 적어도 소셜라이즈가 되어서 다른 생각보다는 일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까 싶엇다. 애아빠는 기술직이라고 해서 걱정이 덜 되었고 외국에 나가 살아도 좋다고 햇었다.네이버에 인인가 무슨 번역자원봉사도 한다고 햇다.그리고 내가 없는 배경도 있다고 생각햇다.

국제기구라는 것이 말도 좋지 현지인과다른나라 사람들과 같이 일하려면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고 현지인들과도 관계가 중요하다.집에 있으면서 가정부와 불미스러운 일을 보기가 좀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을 받을 것같았다.그리고 부탄에서 외무부 여직원과 골프를 쳤는데 부탄의 골프클럽모임에 가자고 했는데 안갔다. 혼자서 갔다가 술모임에 좀 그럴것같아서...한데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에 겪은 일때문에 너무 소심하게 굴엇던 것은 아닌가 싶다. 골프클럽에가서 다쇼들과 어울리고 무역성사람들과 어울리고 간단하게 음료정도는 마시고 왔었어야 햇는데...릴리완축이라고 다른 사람과는 좀 달리 도도하면서 나에게 이야기을 하려고 무던히 애을 썼던 것같다.차라리 차을 한잔 하자고 하고 식사을 같이 했었으면 좋았을터인데 ...무작정 골프을 치더니 저녁에 골프클럽에 모임이 있으니 나오라고 연락이 오면 ...나는 자동차가 없어서 행사가 끝나면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그곳은 어둠이 깔리면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자동차만 움직인다. 집을 팔아서 자동차을 사는 나라라고 카운터 파트너는 이야기 했다.내 자동차 티오때문에 여러사람이 물어왓다. 너 자동차 안사면 나에게 그 티오을 달라고 말이다. 자동차을 살 수 있는 권한은 6급이상 공무원들에게 제공된다고 한다.외국에서 자동차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있는 쿼터가 UNV들에게는 있다. 다른 봉사단에게는 없다. 단지 SNV들은 도착하면 살림을 준비하면서 자동차을 사거나 빌리기도 한다.

난 운전을 못하니 애아빠가 자동차 운전을 하면 좋지 않은가. 제3세꼐는 도시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지만 도시만 나가면 비포장 도로가 일반적이다. 30년전에 방글라데시도 비포장도로가 일반적이엇고 부탄도 팀푸만 나가면 도로가 좁고 옆은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보통 외국인들은 팀퓨밖을 잘 안나갓다그런데 유니세프대표 와이프는 가끔씩 자동차을 타고 지방으로 가서 식물을 채취해 온다고 했다. 그 집 정원은 잘 꾸며져 있었다.남편이 사무실에 가서 일하는 동안에 그 맥그납부인은 정원을 가꾸는 듯 햇다. 핫바지을 입고 말이다. 부탄 야생식물채취하는 프로그램에 같이 햇는데 하지방의 야산자락에서 사과티을 한잔 나에게 건네주어서 마셨는데 너무 따스하고 좋앗다.팀퓨정원투어에 그녀의 집을 소개하고자 컨택을 하니 허락을 해주며서 무엇을 준비해야하냐고 물어서 이야기 해주었다. 어떤 내용으로 진행할 것인지 컨텐츠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너무나 잘 해주어서 감사하다. 한데 유니세프 대표분이 네팔로 떠날데 송별파티을 undp 대표가 열어주었는데 그 때 내가 아파서 unv오피스에가서 초대장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팀퓨시장에 장을 갓다오는데 일본인이 자기집에 초대을 햇다. 그 집에 갓었다. 그리고 월요일에 UNV오피스에 가니 유니세프 대표분에 송별파티 초대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벌써 때는 지났엇다.

그다음부터는 꼭 UNV 오피스에 가서 초대장을 확인했다. 외교적인 결례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서 국제 에티켓에 대한 책을 다시 읽었다. 난 UNV로 나갈때 코바3기 언니을 한시간정도 만나 차 한잔을 햇디. 키르기스탄인가 다녀온 분이었다.

난 가진것은 없어도 아직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살아간다. 누가 알아주던 말든...한데 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앗으면 한다.애아빠와 이혼을 한지 오래 되어서 애아빠의 얼굴도 까막득하다. 그리고 저세상간다고 했으니....한국에서는 여자혼자사회활동하기에는 사회적 구조가 안좋다. 친구들도 이혼을 하면 멀리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안하고 그냥 만났다. 유럽과 일본과는 너무나 다르다.

서정주씨는 국화옆에서 라는 시을 썼다. 그분은 저세상갔지만 결혼을 세번이나 햇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지역지 취재기자생화을 하면서 그지역의 문화예술인의 리스트을 받아 인터뷰 요청을 하는데 전화로 선뜻받아 주어 놀랬다. 국민학교옆에 2층에 책이 둘러쌓인 서재에서 인터뷰을 친행했다. 그분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을 들으며 아이들을 바라본다고 했다. 그분은 러시아에 다녀온 사진도 보여 주었나 기억이 희미하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국내 훈련과정에서는 그 때 그 옆에 교육원에 조병화 시인이 오셔서 그분에게 사인을 받았다. 그분은 종이에 꿈이라고 써주셧다. 그것을 인도네시아에 파견되는 오수경씨에게 건네 주었나 봉사단에는 이야기을 들어보면 부모님이 외국인분들이 계시다보니 외국문화교류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나는 이집에 살면서 아이을 키우면 많은 생각을 하고 한밭도서관과 동네 짝궁어린이도서관을 왓다갔다하면 책을 밤을 새워 읽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을 하기에도 겨울에는 무릎이 더 시리다. 누워서 책을 보며 딸아이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햇다. 만약에 아파트에 살았다면 커피한잔을 마시며 한밤중에 새벽에 날이 새는 것을 바라보지 않앗을까 싶다. 오노마 호텔에서 스타벅스 커피숍인가 아침 7시에 오픈한다고 했다. 커피 한잔 마시러 오전에 간다면 욕할까 28층인가 까지 올라가야 한다면...오전에 차 한잔 같이 하자고 하면 나올 이가 몇명이나 될까

비지니스 하는 사람들은 오찬모임을 한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아니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오아침 6시나 7시에 커피 마시자고 하면 나보고 미쳤다고 할 것이다.

밤을 새워 책을 읽다가 덮고 옆에 편의점에 가서 커피을 사서 정원의 계단에 앉아서 풀냄새 맡으며 차한잔 하는 기분도 좋다.

처음부터 이집정원에 미니 장미등을 심은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태평시장에서 토마토나 코추 상추등을 사다가 심었다.어느해에는 호박도 사다가 심었는데 화분에 심었던 호박하나가 덩굴을 이루어서 계단을 타고 옥상까지 올라갓다. 여름이 지나도 열매가 안맺어서 엄마가 호박덩굴을 걷어내는데 계단 윗쪽으로 해서 옥상쪽으로 호박이 여러개 열리어 있더란다. 그래서 우리는 호박붙친개도 하고 호박된장국도 끓여먹으며 웃었다.

그전에 또 무엇인가을 심어서 어머니가 열심히 오후가 되면 물을 주셨다.어머니의 한 일과엿다.
이집에 이사와서 처음에는 아버지가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셧다.오전에.어떤 딸 친구 어머니가 보았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년이 넘었는데 어느날 마트앞에서 만나니 나보고 아직도 막걸리 드세요하는 것이었다. 아파트 아주먼니들은 모여서 별의별 이야기을 다햇나 보다.푸르뫼 아파트다.나중에 아파트에 볼일이 있어서 가니 아파트부녀회주최로 쇼셜댄스강좌도 열고 있었다. 아마쇼셜댄스 을 배우고 나이트까지 가지 않았을가 싶다.

내가 부탄에서 돌아온 그해에 크리스마스전날에는 내 큰 올캐가 중천동아파트에 아줌아들과 나이트인가 소주을 마신다고 나에게 두조카들을 맡기고 가서 그다음날 왔던가 늦게 왔던가

이사을 하려고 보니 항아리을 가져 갈 생각을 할 까 팔까 하다가 가져간다. 우리 김장을 담던 고무라도 가져간다. 김치을 담으려면 배추을 소금에 절여야 하는데 큰 다라에다 예전에는 배추을 절였다. 이집이 지어진지 40년이 넘었다는데 그러면 이집의 정원은 김장독을 담던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겨울에 항아리을 땅속에 묻고 겨우내 김치을 꺼내서 먹는데 얼음이 끼어서 따스한 밥과 먹으며 정말 맛있다난 방학때가 되면 상을 어머니와 차리면서 김장독에서 얼음성긴 김치을 꺼내서 도마에 썰면 손이 참 시렸다.한데 임신해서 그 얼름성긴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그리고카레도 먹고 싶어서 부산김해에서 비행기타고 서울 김포공항에 가서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에 가서 카레와삼우차도 먹었다. 부산롯데호텔에 전화해 블란서 식당이 있냐고 물었었다. 프랜치 오니언 스프가 먹고 싶어서... 방글라데시에서는 중식당에서 프랜치오니언스프등 각종 스프을 판다. 부탄에 샤캄이라는 말린 고기 조린것도 먹고 싶었다. 부탄에 영사로 활동하던 윤병태씨와통화가 되서 샤캄을 부탄에서 가져 올 수있냐고 물으니 한다고 했는데 서울사무소을 가니 치킨볶음을만 먹고 왔다.내가 정장이나 잘 입고 갓어야 했는데 ...내 인맥으로 사업을 연결해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유시팡에 전통의학사업을 진행하던 영국유학파이야기을 하며 종로 5가에서 인삼씨 1KG을 사다 주어서 도출라인가 어딘에서 인삼재배을 한다고말이다. 같이 일한다고 하는 분도 인사을 나누었는데 좀 거만하시게 행동을 해서...
보통 제3세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좀 ...그렇다. 한국과 같이 민주화된 곳은 아니다.왕정국가도 있고 공산국가도 있고 민자 셔츠보다는 카라가 있는 와이셔츠을 입는 사무직들에게 인사을 깎듯이 한다.

어제는 이사준비을 하면서 유니세트대표와이프가 생각이 났다. 나중에 만났는데 인사을 하러갔나 잘 생각이 안나는데 남편이 먼저 네팔로 떠나고 이사짐을 보낼 준비을 한다고 하셧다. 그런데 정원이 너무 잘 꾸며져 잇었다. 그동안 채취했던 식물은 ...좀 걱정이 된다. 아이들 이야기는 하지 않앗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이 아파도 전전긍긍하는데 그분은 자신이 돌보아던 그정원에 식물들을 어찌 두고 떠났을까

Wx‐orLD FOOD PROGRAM에 대표부인은 좋은 오디오을 아니 스피커을 가지고 계셧다. 거실에 양쪽에 음악을 듣는지..자주오라고 했는데 ...전화번호을... 아마 좋은 음악 시디가 많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는 소니보다는 캔우드라는 시디플레이어을 더 알아준다고 했다.
정원서정주김장김치장독맥그나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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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서정주김장김치장독맥그나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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