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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농대 축제에서 시낭송과 노래한 사진이 학생회에 있을까
작성자 박** 작성일 2026.02.14 08:41 조회수 39
충남대 농대 축제에서 시낭송과 노래한 사진이 학생회에 있을까
1980년대 말에 학생회 의 싸움이 이제는 정치판에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6.02.14 0759l박향선na4amich

충남대 농대 축제에서 시낭송과 노래한 사진이 학생회에 있을까
1980년대 말에 학생회 의 싸움이 이제는 정치판에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부탄에 돌아왔을때 IMF이후고 고 김대중선생님이 대통령에 있을때이다. 이것도 정치적인 바람도 있었지 않나싶다. 나의 성향과 한밭도서관에서 시사저널과 책을 보고 방글라데시와 부탄을 통해 지금은 사회을 보는 눈이 다르다.

1989년 대학졸업여행을 갔을때 문뜩 사진을 다시 보앗을떼 깜짝 놀랫었다. 나중에 사진에는 내가 어느 사진이 이상햇다. 내가 아니엇다. 문제는 나는 별로 화장도 안하고 다니는데 충남대 원예학과 졸업여행을갓는데 같여자애들이 아침마다 나을 화장을 해 주엇다. 화자을 해야 한다고. 우리과 언니에 나이든 언니인 한옥화는 내 눈썹을 밀고 눈화장을 해주고 애들은 화장품을 주며 화장을 하라고 했었다. 우리 어머니는 화장을 너무 일찍하면 피부가 상한다고 나중에 대학4학년때인가 엘지드봉의 여행가방세트의 녹색가방의 화장품을 선물도 주었다.기초화장품이었다.화장품을 안사주어 집에 있던 녹색아이펜슬을 쓰다보니 녹색귀걸이 까지 하게 되었다.

보통 대학생때 여학생들은 대학1학년부터 화장을 하다보면 대학4학년이 되면 화장이 더 짙어 진다.나는 화장을 안하다보니 더 동기생보다 더 어려 보였다. 대학4학년때 충남대 옆에 다니던 버스에서 KAIST 1학생이 종이에 기숙사주소인가 전화번호인가을 받은적도 있다.그때 과 친구가 같이 있어서 안다. 내가 웃었다. 그리고 그 쪽지을 버렸다. 난 대학졸업생인데 하고...

1980년도 말이다.한옥화언니는 과 대표도 하고 충남대 여학생장도 햇었나언니가 나에게 이것 저것 할때 도와 달라고 하면 많이 도와주었다.잘기억이 안난다. 오래된 일이라.그리고 충남대 소리하나 식품가공학과 한희정언니도 충남대 농대 여학생장을 하면서 충남대 농대 축제에 노래인가을 부탁햇엇다. 수의학과에 어느 선배의 기타소리에 맞추어 노래을 부른는데 기타 키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사람은 기타을 안쳐서 나 혼자서 상록제 무대에서 노래을 불렀다. 다 아는 사람은 아는 노래다. 라스파뇨라라고 과모임에서 이노래을 불러서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이 그당시에 퍼졌다. 성악과 가려다 농대 들어온 사람이라고... 단지 나는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나오는 노래가 좋아서 불렀다.월드뱅크 전문가 앞에서도 불렀다. 부탄에서 재일교포 건축전문가을 플럼이라는 화교가 하는 식당에 갔다가 만나서 그날 건축전문세미나가 끝난 JOCV 져녁모임에 참석해서도 노래을 불러달라는 남자들의 요구에 내고향 남쪽바다 가고파을 불렀었다.그런데 사람들이 노래을 불러달라는 소리을 하곤헤서 라스파뇨라라는 노래을 불렀었다.그집은 건축분야JOCV여성과 부탄건설부의 남자가 동거하는 집이었다.

그 당시에 부탄사람들은 학교에서 음악을 안배운다고 햇다. 방글라데시도 학교에서 음악을 안배운다. 부탄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미친년이라고 한다고 유시팡에 있는 여자가 이야기해주었다.

한국에서 돌와와서 나중에 몇년이 흐르니 대전에서는 잡을 잡기가 어려웠다. 남동생 조카들은 나에게 손을 벌리고 어머니는 힘든 순간이엇다.어머니는 힘이 들면 나에게 짜증을 낸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안좋으면 김치을 담는데도 잘 안담아진다.

야후에서 검색을 해보니 연령제한 남녀구별이 없는 것이 부동산분양이엇다. 부동산 분양을 하면서 그당시는 2003년인가 대전정부청사인가에 사학연금회관앞에서 파라솔 영업을 나가서 전단지을 나누어 주는데 충남대 원예학과에 이숙주가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쳐 인사을 하려는데 한무더리의 회사친구들과 지나가면서 그냥 지나갓다. 그리고 무슨 말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충남대 농과대 원예학과 친구가 연락이 왔다. 성모여자고등학교에 동창이었는데 이용임이라고 무슨말이 돌았는지 우리집에 와서 이숙주 집에을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목원대 밑에 커다란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동창과 들어가서 앉아서 이야기을 하다 초등학교 아들인가 본다는 어느 출판사에서 나오는 아이들 월간지가 벌써 국제기구인가 국제협력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랫다 나중에 이야기을 나누어보니 남편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자신은 출판사책을 판다고 햇던가.청양의 시아버지가 약사을 하고 시댁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햇다고 이야기 하고 나왓다. 친구에 이야기에의하면 나중에 동양파라곤으로 이사을 햇다는 것이다. 그 남편은 그때 당시에 충남대 농대 부학생회장이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지낸다고 했는데 내가 방글라데시에 나갓을때이다. 방글라데시 나가기전에는 연락이 오는 아니 내가 연락을 햇던가 원예학과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언니와 이야기하다 모임을 만들었다. 이숙주의 남편이 부학생회장출신이었던 것은 방글라데시 갔다와서다. 상업농경영에 그을 쓴 것을 보고 같은과에 탑으로 입학했던 김현숙이라고 집으로 전화가 와서 원예학모임에 참석햇엇다.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부탄갔다 와서 집에 잇는데 한밤중에 찾아왓다. 자기 대학원논문쓰는데 영작을 해 달라고 해서 알았다고 써주었다. 문법은 모르고 그냥 작문햇다. 오이에 재배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원예학과 86학번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모였다. 그전에 남자애들은 내가 보고 싶다고 만년동 여자만 장어집인가에서 모임룸에 가서 만났는데 사업 할거리가 없냐고 물었는데 대답은 안햇다. 남자동창생중 한명이 논산에 사는데 군대 가서도 휴가가 나오면 전선영이라고 내친구을 만낫다고 하는데 친구는 나에게 전하기만 햇지 같이 만나지는 않앗었다. 그 남자애는 대학1년때 여름방학대 대학등록금을 벌기위해 건설현장에서 알바을 햇다고 해서 너무 대단해 보여서 말이라고 하고 싶엇는데 이숙주와 다른 고은정과 한주연이라는 친구와 같이 어울려서 이야기도 별로 못햇던 친구다.

그런데 대학졸업하고 나면 모이던 친구들도 다 흩어지나 보다 그 그룹도 흩어져다. 처음에 내가 사귀고 싶엇던 애는 고은정이다. 왜냐면 스웨터가 너무 이뻐 보여서 ...그리고 키는 작지만 활달하고 그애가 자기 아버지가 교사라 자기가 대학들어올때 가산점을 받았다고 햇다.나중에 두살 연하에 목사와 결혼했다. 도마동에서 김치담아가가는 것을 길거리에서 만났다.그리고 원예학과 모임에서 보지을 못햇다

딸아이의 문제로도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할아버지을 보고 싶어 한것인지 제사에라도 가고 싶엇던 것인지 이야기을 하다보니 그때 사태을 이제야 짐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토스을 잘해야 한다고 누가 이야기을 햇는데 지나고 보니 내친구들은 토스을 잘 안해주엇구나 싶다. 김현숙도 전선영도 과친구 연락을 해 달라고 이야기 해도 안가르져 주었다.

그리고 각 모임이 부부동반으로 모일것을 감안해서 한국귀국단원모임kova 4기 모임을 서울 성동구 뜩섬의 배레스토랑에서 할려고 햇다. 4기모임을 낮에 단원출신은 배에서 모임을 라고 가족들은 바로 앞에 뚝섬의 잔디광장등에서 시간을 보냇으면 했다. 자기 와이프을 정식으로 소개해준것은 KOVA이병연이라고 한명 뿐이었다. 코바 체육대회간다고 오라고 연락이 왔고 이천까지 오면 자동차을 이야기 해준다고 햇나.이천에 도착해서 유네스코 연수원에 갈려고 버스을 탈려고 하는데 금방 버스가 없어서 전화을 하니 지금 오는 사람이 있다며 연락을 해준것이 최필곤이라고 자동차을 같이 타고 오라는 것이다. 한데 그때 그 자동차에 가족이 있었다.그래서 인상을 햇는데 맨숭맨숭햇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도착해서 선배들과 인사을 나누고 아이들과도 이야기을 하니 서울에서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여러 과외을 하고 보험상품을 통한 과외도 한다는 이야기을 들었다.그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잘 감지을 못햇엇다. 그때 이천에 유네스코 체육대회에서 어쩌다 한번 간 것이기에 관심도 없었는데 연락이 와서 간것이외는....

돌아오면서도 씁쓸했다.그때가 신젠타회장을 만나고 무슨관계로 홍보실을 찾으니 그 홍보실 사람은 안나오고 최필곤이 나와서 술을 마시자고 햇다. 기가 막혀서 ..나는 술을 잘 못마신다. 아니 잘안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지하철에서 잔다.소주하잔. 맥주 250cc 정도가 예전에 내 주량이었다.그러다 안마시니 지금은 포도쥬스만 마셔도 약간 취기가 온다.

나는그래도 신젠타가 다국적기업이니 동기가 크기을 바랬다. 외국에 지사로 나가 일하기을 바랫고 신젠타의 기사을 쓰지 못하고 있자 주필이 내가 국회의사당을 다녀오던날 사무실에 안들어왓다는 이우로 한국영농신문에 잘리었다. 용산역을 통과하면 빠른데 표가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그때는 여의치가 않아서 용산역을 뼁둘러서 한국영농신문을 갓었다. 취재한 원고은 써서 후에 팩스로 보내 주었다.

부탄에서 완디포당에 갓다가 일본 건설회사 일로 방문한 일본인도 만났다. 식사초대을 해서 같이 식사을 하는데 옆에 직원을 소개하며 자기 밑에 직원인데 JOCV출신이라고 소개 해주어인사을 햇다. 주로 대표들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사적으로 만난 식사초대에 혼자가기가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타냐 하딩과 가끔씩은 몽골에 돌마도르지 고쳐 산부인과 여의사와 같이 갔었다.저녁식사초대라 다운타운가와 내집은 너무 멀기도 하고..쿠바의사인 산타나가 자기 집을 나에게 소게할때 들어갓어야 한다.다운타운가에 있어서 차가 없어도 도보로 다닌다. 한밤주에 모티당 언덕가기 가기는 좀 멀었고 다마스탣택시가 별로 없었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기전에 이용임이라고 사업을 하던 친구가 나을 암웨이에 초대 햇다. 그곳에 가서 알게 되었다. 암웨이가 국가신용도을 평가하는 무디스회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자신의 무리에 나가서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여주고 했다. 나는 그때 말을 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잇엇다. 그리고 실재로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내 후배가 다치나 하는 생각도 햇다.그리고 친구는 피부측정을 햇는데 내가 중성으로 나왓다. 어떤 여자자 웃었다. 그리고 충남일보에 다니는데 어느날 이친구가 찾아와 아리스타인가 암웨이 화장품을 소개 햇는데 페이스 파우다가 너무 입자가고왓다. 암웨이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매장을 구성한다. 저녁세미나에 가고싶은데 갈 방법이 없다. 이용임이 연락이 안된다. 김현숙이 알려주이 않아서.여러번 이야기 햇는데 ..

왜냐면 방글라데시에서 정수기에 들어가는 석회봉이 굉장히 싼데 암웨이 에서는 굉장히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물론 생산지가 다를수가 있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분들은 부부모임으로 파티와 같은 모임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난다.비지니스하는 사람에게는 명함이 중요하다. 암웨이을 하면 명함이 나온다. 그리고 물건을 사든 안사든 갈곳이 생긴다.친구는 사업을 하며 회
계장부을 관리하는 것이 곤욕인데 암웨이는 회계장부을 회사에서 전산처리 한다는 것이다. 애터미에 한번 가보고 싶엇는데 나을 초대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다. 그리고 내가 국내 신용정보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홈페이지는 암웨이 방식이 많다. 암웨이는 강남에서 시작햇다고 한다.

임신을 해서 대전에 왔다가 한옥화라고 지금은 연락이 안되는데 진잠에서 식당을 한다고 해서 갔는데 식사을 차려놓고 우리과 82학번 아저씨가 이야기만 하고 한옥화언니는 나타나지도 않앗던가 동네 아줌마들과 나이트 클럽을 갔다고햇나 그 근처에 봉구모텔인가에서 하룻밤 자고 이용임아저씨가 82학번인데 그곳에 가서 복합터니널 근처에서 문방구을 크게 하는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내려갓다. 원래 이 아저씨는 충남대 학생신문의기자로있다가 대전매일신문기자로 들어가 일햇던 아저씨디. 이아저씨가 예전에 대전에 내려와 고시공부하던 서강대 나온 남자을 소개해주기도 햇다.행정고시든 사법고시든 1차에 합격하고 나면 2차에 안되면 미련이 남아 공부을 하게 된다고 햇다.볼링을 그사람이 쳐서 알게 되었고 리베라 호텔을 4층 수영장에 맥주 팝레스토랑인가을 같이 간적이 있다. 그전에 소개 받거나 써클 선배들과 어울리는것과는 차원이 달랏다. 스포츠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그때 써클 선배인가 단체도 계룡산에 다녀와서 어쩌다 보니 자리을 어떻게 햇던 가 사이가 멀어지고 다른 여자을 사귄겅으로 안다.

그리고 나는 여름에 국제수학이라고 갑자기 어머니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눈물로 하소연햇다. 대학졸업가을학기에 대기업시험이라든가 대학원시험이 있었다.그곳에서 교육없이 교육청에서 나온 명부로 각 학교 자모들에게 전화을 햇었따. 그곳에 회장님에 나을 귀여워 했는데 이야기 하는 것이 그분이 교육계에서 몸담고 있엇는데 아들이 자기 퇴직금으로 사업을 한다고 햇다. 노구에도 몸을 이끌고 추운 회사에 나와서 앉았다가 가시곤 햇는데 실질적인 경영은 아들이 햇다. 나보고 친구들은 끝까지 일한다고 독종이라고 했고 그때 이숙주도같이 일하다가 하지 못하고그만두고 나중에 졸업때인가 대전농촌지도소인가 임시직으로 갔다.졸업사은회에 갓더니 교수님이 찾앗다고 햇는데 연락이 안되었다고 이야기 하셧다. 농업생명공학연구원에 추천을 하려는데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안해 주었던 것이다. 내가 있던 충남대 원예학과 육종학 실험실은 86학번 여학생들 아지트엿다. 누구가 지나가다 들렷다.친구들이 많이 찾아오니 교수님 커피가 아니라 동기들에게 커피타주기 바빴다. 그러나 누가 한번 커피을 사온적이 없엇다. 딱 한명 재수해서들어온 이모씨라고 자그마한 언니가 양념통닭을 사와서 맛있게 먹었다. 조리사공부을 한다고 햇다..

한옥화언니는 대학졸업무렵에 82학번아저씨와 동거로 식당을 궁동에 차렷다. 언니는 대학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사람들의 호구조사을 한것인지 이사람부모는 재산이 얼마고 이사람부모는 교육을 어디서 받고 이야기을 나에게 햇다.다른 친구와는 다른 이야기을 해서 좀 거리을 두고 있엇다. 언니와 동거한 어저씨는 성환사람인데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온 사람이라고 해서 놀랫다.식당초기에 언니가 힘들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햇다. 가서 보니 테이블을 만들어놓앗는데 타이어바퀴을 쌓고 그 위에 판자을 올려 놓앗는데 식당이 분위가 썰렁했다. 그래서 그때 동생이 대전에서 디자인학워을 다니는데 재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은행동에 동생과 알파분구을 갔는데 문구가 너무 비싸서 그림도구들이 너무 비싸서 놀랬다. 그때 동생이 쉬트지로 뭔가 해서 언니에게 이 쉬트지로 꽃모양을 각양각색으로 만들고 오려서 가져다가 그 벽에 붙여 주었다. 언니가 좋아 했다.지금생각해보니 내가 벽에 인테리어을 해준것인데 식사는 대접해야 하지 않앗을까나는 차 한잔도 얻어먹지 못햇다. 언니가 식당을 하기전에 피부미용을 배운다고 해서 독일산 화장품도 사주고 나중에는 홈인테리어을 한다고 해서 집에 할머니가 벽에 기댈 쿠션을 하나 해주고 싶어서 쿠션을 재작해달라고 햇는데 안해주엇다. 그때 1990년대 초에 3만원을 주었다.한옥화언니가 아직도 애들과 연결이 되었다면 여성정치쪽에서 일하지 않을까 싶기도..

우리과에 안형민아저씨가 학생장 출마을 할때 나보고 도와달라고하는데 뭐라고 했냐면 자리 하나 줄테니 도와달라고 햇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학생출마하는데 피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하나 줄테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안형민 아저씨83인가아버지가 교육청에서 일한 고위간부급으로 일하다 퇴직햇었다./

그때 학생회장에는 다른 사람이 학생회장이 되었다. 소리하나 써클에서 진구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을 물어 보았고 소리 하나에 한상명언니가 농학과인데 다른 사람을 지지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을 햇다. 나중에 여학생장이야기가 나왓는데 나는 그냥 지나갔다.한무더기의 학생들이 우리집근처 태평동 구굴다리에서 오고 있어서 내 뒷조사을 햇나 생각햇는데 그것이 아니라 나는 대전성모여고에 동창모임에 별로 안나갓다. 바빠서...가정의류학과에 성모여고 모임에 임원인가 무엇을 맡은 친구와 도서관에서 이야기하며 차하는 것이 전부엿고 나중에 회계학과에 옆반 반장이 입학해 여고시절 말도 없엇는데 나을 아는 척해서 그녀을 따라 경상대까지 갔었다. 재수을 하고 대학을 들어와 친구가 없엇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국민학교 동창들을 캠퍼스에서 만났는데 인사도 안했다. 불교학생회에서도 남자애가 우리반 반장이엇는데 멀뚱멀뚱처다만보았다. 우리과에 황보향언니가 불교학생회나오라는데 그당시 우리것과 관련되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그리고 회꼐학과에 국민학교때 나와 친햇던 그애 집도가고 했는데 서문앞에서 만나니 나보고 느닷없이 얼굴값한다고 하고 가버렷다.난 옷도 좋은 옷도 안입었고 화장도 안했었다...뻥졌다.선배중에 구정란 언니는 나보고 ccd에 나오라고 대학기독교 모임인데 그곳에서 아나운서하는 것이 어떠냐 졸라 되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숙주는 부학생회장이 점 찍어두어 여학생회장이 된 것이다.
그냥 지나갔다.그런데 이야기을 들어보니 이애들이 계속 모임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대학3학년인가 ROTC인가 앞에 조직배양실에 있던 친구인가가 이야기햇다. 중남대 농대에 테니스써클이 만들어 진다고 나오라고 ...친구와 나갔는데 실험실에서 있는 농대생둘과 예비역 아저씨들과 몇몇 ROTC들이었다.ACE다 .그때 예비역들이 짖꿎어서 현역들과 어울리게 되었다.어던 ROTC와 내가 축제을 다녀오자 앞방에 조직배양실에 친구가 자기가 대학1학년때 미팅을 해서 사귀었다고 했엇다. 그래서 거리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쯤에 우리과에 김학헌이라고 나에게 뭐라고 하고 사귀자는 식으로 햇던가 그랫는데 그 애가 군에 입대한다 고 내앞에 있던 실험실에 그 친구가 울어서 황당햇었다.

부산에서 애을 낳고 올라와서 센트리아 오피스텔에 갔다가 안형민선배을 만낫는데 연락도 없다.

저쪽 집에 살때 버드네에서 살던 사람이 딸 구몬 선생으로 왔다가 발레 복을 준다고 햇는데 이사오는 바람에 못얻었다.딸아이 구몬선생이 이쪽집으로 이사와 바뀌었는데 이야기 하다가 자기 남편이 원예학과 84학번이라고 햇다.
그리고 충남일보에 장영래 차장은 자기의 아내가 원예학과라고 하면서 그녀의 미술학원인가을 갔엇다. 그런데 아내가 조?햇는지 원예학과 같지는 않았다.그후로 장영래씨는 코리아 타임즈을 운영하고 미디어강사을 해달라고하더니 이제는 편집국장으로 와달라고 한다. 월급없이...

아무말없이 지나가기에는 너무 한심스러워 내딸을 걱정한다.
대학축제학생회시낭송회정치중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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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학생회시낭송회정치중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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